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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로 모두 2077책으로 되어 있다. 1973년에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편년체 역사서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방대한 양의 기록에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옹기나 옹기장에 관한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주로 통치와 관련하여 화재 예방이나 재해 구제를 위한 장(醬)과 관련된 옹기의 마련 등과 관련된 기록이 등장하며 옹기장의 구체적인 실상을 알려주는 기록은 많지 않다.

[원본]

下甲士鄭習之等四十餘人于獄, 杖之. 初內官李萬年家與甲士羅有仁家近, 兩家俱被盜,
하갑사정습지등사십여인우옥, 장지. 초내관리만년가여갑사라유인가근, 량가구피도,
恐其復來, 同心伺之. 夜有人至有仁家 有仁執之 乃左軍甲士鄭習之也. 會三更巡官至,
공기부래, 동심사지. 야유인지유인가 유인집지 내좌군갑사정습지야. 회삼경순관지,
執而囚之. 明日萬年告于巡衛府曰 今鄭習之夜至有仁家, 見執而囚. 請徵被盜物以給. 巡
집이수지. 명일만년고우순위부왈 금정습지야지유인가, 견집이수. 청징피도물이급. 순
衛府問習之, 習之曰非爲盜也, 欲奸有仁之妻耳. 巡衛府執有仁之妻問之, 乃服. 巡衛府
위부문습지, 습지왈비위도야, 욕간유인지처이. 순위부집유인지처문지, 내복. 순위부
放習之. 習之率甲士四十餘人, 至萬年家, 擊破醬;及酒甕, 斷絶機上織布, ;害人物.
방습지. 습지솔갑사사십여인, 지만년가, 격파장부급주옹, 단절기상직포, 장해인물.
他日又請侍衛甲士一牌, 至萬年家, 隣人畏其暴, 皆逃匿. 成均書吏金好仁, 以其家近萬
타일우청시위갑사일패, 지만년가, 린인외기폭, 개도닉. 성균서리금호인, 이기가근만
年家, 獨見執, 被杖無算. 萬年告于上, 上曰汝言妄矣. 習之雖非爲盜, 欲奸人妻, 且犯巡.
년가, 독견집, 피장무산. 만년고우상, 상왈여언망의. 습지수비위도, 욕간인처, 차범순.
巡衛府豈遽釋之乎. 萬年曰小人何敢誣罔上聰. 上曰汝若妄言, 當受誣告之罪. 命召巡衛
순위부기거석지호. 만년왈소인하감무망상총. 상왈여약망언, 당수무고지죄. 명소순위
府掌務, 使朴錫命問曰何故釋習之. 對曰以盜告習之, 習之之情, 非盜也. 欲奸有仁之妻
부장무, 사박석명문왈하고석습지. 대왈이도고습지, 습지지정, 비도야. 욕간유인지처
耳. 是以放之. 上作色曰 萬年之家, 與習之家相去不邇, 欲奸人妻而犯巡者, 其無罪乎.
이. 시이방지. 상작색왈 만년지가, 여습지가상거불이, 욕간인처이범순자, 기무죄호.
巡衛府萬戶, 皆可人也, 何處事之若是耶. 問錫命曰掌務誰歟. 對曰李漬. 上曰是逍遙之
순위부만호, 개가인야, 하처사지약시야. 문석명왈장무수여. 대왈이지. 상왈시소요지
行, 執尹;者乎. 對曰然. 上曰使所由縛四品員, 過乎中, 釋習之, 不及乎中, 是凡人也.
행, 집윤린자호. 대왈연. 상왈사소유박사품원, 과호중, 석습지, 불급호중, 시범인야.
命錫命曰漬囚於巡衛府, 習之及偕至萬年家甲士四十餘人, 皆下獄. 李叔蕃及錫命啓曰,
명석명왈지수어순위부, 습지급해지만년가갑사사십여인, 개하옥. 이숙번급석명계왈,
掌務被囚, 萬戶不敢仕. 習之等, 誰能決乎. 上曰萬戶雖不仕, 其餘官等何在. 叔蕃等曰
장무피수, 만호불감사. 습지등, 수능결호. 상왈만호수불사, 기여관등하재. 숙번등왈
皆不敢仕. 上曰掌務不可囚也. 囚掌務, 是辱萬戶也. 若移習之事於刑曹, 囚巡衛府掌務,
개불감사. 상왈장무불가수야. 수장무, 시욕만호야. 약이습지사어형조, 수순위부장무
則是亦辱之也. 予之愛護甲士者, 以有緩急則敵愾禦侮也. 甲士等暴虐如此, 與倭無異,
칙시역욕지야. 여지애호갑사자, 이유완급칙적개어모야. 갑사등폭학여차, 여왜무이,
不可不懲, 皆照律決杖. 竟不囚漬.(太宗實錄, 권 5, 太宗 3년 6월 辛亥)
불가불징, 개조률결장. 경불수지.

[번역]

갑사 정습지 등 40여 명을 옥에 가두고 곤장을 때렸다. 처음에 내관(內官) 이만년의 집이 갑사 나유인의 집과 가까운데, 두 집이 함께 도적을 맞았다. 도둑이 다시 올까 두려워하여 힘을 합하여 지키고 있는데, 밤에 어떤 사람이 나유인의 집에 이르렀다. 나유인이 붙잡았더니, 바로 좌군 갑사(左軍甲士) 정습지였다. 마침 3경(更)에 순관(巡官)이 와서 잡아다가 가두었다. 이튿날 만년이 순위부(巡衛府)에 고하기를,“지금 정습지가 밤에 나유인의 집에 이르렀다가 붙잡혀 갇혔으니, 청컨대 도적맞은 물건을 징수하여 주시오.”라고 하였다. 순위부에서 정습지에게 물으니, 습지가 말하기를,“도둑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인의 처를 간통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순위부에서 유인의 아내를 잡아다 물으니 죄를 인정하였다. 순위부에서 습지를 석방하였는데, 습지가 갑사 40여 인을 거느리고 만년의 집에 가서 장항아리와 술독을 때려 부수고, 베틀 위의 직포(織布)를 끊어버리고, 사람을 다치게 하였다. 다른 날에 또 시위갑사(侍衛甲士) 한 패(牌)를 청하여 만년의 집에 이르니, 이웃 사람들이 그 횡포를 두려워하여 모두 도망해 숨었다. 성균 서리(成均書吏) 김호인(金好仁)이 그 집이 이만년의 집과 가깝기 때문에 혼자 붙잡히어 수없이 매를 맞았다. 이만년이 임금께 고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 말이 거짓이다. 습지가 비록 도둑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도 남의 아내를 간통하려고 하였고 또 범순(犯巡)하였으니, 순위부에서 어찌 갑자기 석방할 리가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이만년이 말하기를,“소인이 어찌 감히 왕을 속이겠습니까?”라고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만일 거짓말을 하면 마땅히 무고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고, 순위부 장무(巡衛府掌務)를 부르고 박석명(朴錫命)을 시켜 묻기를, “무슨 까닭으로 정습지를 석방하였느냐?”라고 하니, (박석명이) 대답하기를,“정습지를 도둑으로 고발하였는데, 정습지의 뜻은 도둑질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유인의 아내를 간통하려고 한 것이니, 그러므로 석방하였습니다.”하였다. 임금이 정색하며 말하기를, “이만년의 집과 정습지의 집이 거리가 가깝지 않은데, 남의 아내를 간통하려고 하여 범순(犯巡)한 자가 죄가 없단 말이냐? 순위부 만호가 모두 괜찮은 사람들인데, 어째서 처사(處事)하는 바가 이와 같으냐?”하고, 박석명에게 묻기를, “장무(掌務)가 누구이냐?”하니, 대답하기를,“이지(李漬)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소요산(逍遙山)에 갔을 때에 윤인(尹;)을 잡은 자이냐?”하니,“그렇습니다.”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소유(所由)로 하여금 4품 관원을 묶게 한 것은 중도(中道)에 지나쳤고, 정습지를 석방한 것은 중도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이는 별수 없는 사람이다.”하고, 박석명에게 명하기를,“이지를 순위부에 가두고, 정습지와 그리고 함께 이만년의 집에 갔던 갑사 40여 인을 모두 하옥(下獄)하라.”하였다. 이숙번과 박석명이 아뢰기를,“장무(掌務)가 갇히면 만호(萬戶)가 감히 일을 처리하러 나오지(仕進) 못하니, 정습지 등을 누가 처결합니까?”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호는 사진하지 못하더라도, 그 나머지 관원은 어디에 있는가?”하였다. 이숙번 등이 말하기를,“ 모두 사진하지 못합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장무는 가둘 수 없다. 장무를 가두면 곧 만호를 욕하는 것이고, 만일 정습지의 일을 형조로 옮기고 순위부 장무를 가두면, 이것도 역시 욕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갑사를 애호하는 것은 위급할 때에 적개(敵愾), 어모(禦侮)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갑사들의 포학함이 이와 같아 왜(倭)와 다름이 없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법률을 살펴서 곤장을 때려라.”하고, 마침내 이지는 가두지 않았다.(태종실록 권5, 태종 3년<1403년> 6월 5일)

[해설]

갑사 정습지가 남의 아내를 간통하려다가 순위부에 잡힌 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갑사는 조선 전기에 궁궐 숙위와 도성의 경비를 담당하는 상층 군인인데 갑사인 정습지가 자신이 순위부에 잡혀간 분풀이로 남의 장항아리와 술 항아리를 깨고 베틀의 옷감을 끊어버렸다는 기록에서 이들 물품이 당시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원본]

賜前護軍童所乙吾苧布三匹, 綿布一匹, 紬布一 匹, 米五石, 醬一甕.
사전호군동소을오저포삼필, 면포일필, 紬布一 필, 미오석, 장일옹.
(太宗實錄 卷 9, 太宗 5年 癸亥)

[번역]

전 호군(護軍)인 동소을오(童所乙吾)에게 모시 세필, 무명 세 필, 비단 한 필, 쌀 5섬, 장(醬) 한 독을 내려 주었다.(태종실록 권 9, 태종 5년<1405년> 3월 28일)

[해설]

조선시대 때 왕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신하들에게 물품을 하사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쌀, 옷감과 아울러 장(醬) 이었다. 이들 물품 모두 생활의 반드시 소용되는 것으로 그 가운데 특히 장(醬)은 그 단위가 ‘독(甕)’이었다.


[원본]

漢城府上都城事宜數條, 允之. 啓曰都城五部各坊, 在前樹立坊名, 以辨認視, 今皆頹
한성부상도성사의수조, 윤지. 계왈도성오부각방, 재전수립방명, 이변인시, 금개퇴
落. 乞坊名橋名街名, 許更樹立. 一 城內大路外閭里各路, 本皆平直, 以便車兩出入. 今
락. 걸방명교명가명, 허경수립. 일 성내대로외여리각로, 본개평직, 이편차량출입. 금
無識人等, 欲廣其居, 侵路爲籬, 窄狹屈曲, 或突出造家, 甚者蔽塞道路, 行路不便, 火氣
무식인등, 욕광기거, 침로위리, 착협굴곡, 혹돌출조가, 심자폐새도로, 행로불편, 화기
可畏. 乞更審視道路, 依舊修廣. (중략) 一 新都家舍, 皆用茅蓋, 民居稠密, 火災可畏.
可畏. 乞更審視道路, 의구수광. 일 신도가사, 개용모개, 민거조밀, 화재가외.
乞於各坊, 每一管領, 置水甕二所備火.(太宗實錄 권 13, 太宗 7년 4월 甲辰)
걸어각방, 매일관령, 치수옹이소비화.

[번역]

한성부(漢城府)에서 도성(都城)에 대한 사의(事宜)의 여러 조목을 올리니, 왕이 이를 윤허하였다. 아뢰기를 “도성 5부(部)의 각방(各坊)이 전(前)에 방의 이름[坊名]을 세워서 변별(辨別)하여 보게 하였는데, 지금 이것이 모두 퇴락(頹落)하였으니, 비옵건대 방(坊)의 이름, 다리[橋]의 이름, 거리[街]의 이름을 다시 세우도록 허락하소서. 1. 성안[城內]의 큰 길 이외에 여리(閭里)의 각 길도 본래는 모두 평평하고 곧아서 차량(車兩)의 출입을 편리하게 하였는데, 지금 무식한 사람들이 자기의 주거(住居)를 넓히려고 하여 길을 침범하여 울타리를 만들어서 길이 좁고 구불구불해졌으며, 혹은 툭 튀어나오게 집을 짓고, 심한 자는 길을 막아서 다니기에 불편하고, 화기(火氣)가 두렵습니다. 비옵건대, 도로를 다시 살펴보아서 전과 같이 닦아 넓히소서. 1. 신도(新都)의 집이 모두 띠로 덮었고, 민가가 조밀하여 화재가 두려우니, 비옵건대, 각방(各坊)의 한 관령(管領)마다 물독[水甕] 두 곳을 두어 화재에 대비하소서.”(태종실록 권 13, 태종 7년<1407년> 4월 20일)

[해설]

태종 때 서울을 정비하는데 가옥의 화재 예방을 위하여 물독을 두도록 규정을 제정하였다.


[원본]

上出餞內史于迎賓館, 命世子;, 右議政趙英茂, 知申事安騰餞于金郊驛. 上還宮至玉
상출전내사우영빈관, 명세자제, 우의정조영무, 지신사안등전우금교역. 상환궁지옥
粧橋邊, 有一老;望見上, ;手而祝, 上曰必無告之人也. 命賜米二石醬一甕.
장교변, 유일로구망견상, 찬수이축, 상왈필무고지인야. 명사미이석장일옹.
(太宗實錄 권 20, 太宗 10년 10월 신유)

[번역]

임금이 나가서 중국 사신을 영빈관에서 전송하고, 세자 이제;우의정 조영무;지신사 안등에게 명하여 금교역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임금이 환궁하여 옥장교 가에 이르니, 한 노구(老;)가 임금을 바라보고 손을 모아 축수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반드시 고(告)할 데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하고, 명하여 쌀 2섬, 장(醬) 1독을 주었다.
(태종실록, 태종 10년<1410년> 10월 28일)



[원본]

傳旨于忠淸監司, 賜讓寧大君酒米三十石幷甕二十
전지우충청감사, 사양녕대군주미삼십석병옹이십
(世宗實錄 권 21, 世宗 5년 9월 19일)

[번역]

교지를 충청 감사에게 내리어, 양녕 대군에게 술쌀 30섬과 독 20개를 내리게 하였다.(세종실록 권 21, 世宗 5년<1423년> 9월 19일)

[해설]

충청도 감사가 양녕대군에게 옹기를 주는 기사에서 조선 초기에도 지방에서 옹기가 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본]

上軫念火災未息、盜賊未;, 召議政府、六曹諸臣謂曰 稽之於古, 有天災者, 有人災
상진념화재미식、도적미미, 소의정부、륙조제신위왈 계지어고, 유천재자, 유인재
者, 大抵人事感於下, 則天變應於上, 理之常也. ;盜之術、救火之方, 其各盡心以陳.(생
자, 대저인사감어하, 칙천변응어상, 리지상야. 미도지술、구화지방, 기각진심이진.
략) 領敦寧柳廷顯等議 一 建都漢陽, 于今三十三年, 大災未有如今日之甚. 此必無賴之
;;;; 영돈녕류정현등의 일 건도한양, 우금삼십삼년, 대재미유여금일지심. 차필무뢰지
徒, 不事農業, 故燒人家, 因而爲盜之術也. 令禁火都監提調, 分授各部, 有里內無營産,
도, 불사농업, 고소인가, 인이위도지술야. 령금화도감제조, 분수각부, 유리내무영산,
而衣食;饒, 夜飮晝寢爲可疑者, 令各坊色掌捕告, 鄕貫根脚及衣食從來, 徐徐細推, 則
이의식풍요, 야음주침위가의자, 령각방색장포고, 향관근각급의식종래, 서서세추, 칙
眞犯可得, 而賊徒自縮矣. 一, 從他處來接, 不爲農工興利等事, 留京遊食之徒, 漢城府令
진범가득, 이적도자축의. 일, 종타처래접, 불위농공흥리등사, 류경유식지도, 한성부영
主戶及隣里人告官, 問其來歷, 還本定役, 隱匿不告者, 依律論罪.(생략) 一 都城內擇穿
주호급린리인고관, 문기래력, 환본정역, 은닉불고자, 의률론죄.;;;;;; 일 도성내택천
池可當處, 開鑿貯水. 一, 貯水盆甕, 依中國例, 每五家一所造置, 考察貯水.(생략)
지가당처, 개착저수. 일, 저수분옹, 의중국례, 매오가일소조치, 고찰저수.
(世宗實錄 권 31, 世宗 8년 2월 庚寅)

[번역]

임금이 화재가 종식되지 아니함과 도둑이 없어지지 아니함을 걱정하여, 의정부와 육조의 여러 신하를 불러서 이르기를, “옛 사실을 상고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재난이 있고, 인간이 저지른 재난이 있다.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움직이면, 하늘의 재변이 위에서 나타나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도둑을 방지하는 계책과 불을 끄는 방법에 대하여 각각 마음을 다하여 건의하라.”하였다.(생략) 영돈녕 유정현 등이 건의하기를, “1. 한양에 국도를 세운 지 지금 33년인데, 큰 재난이 오늘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무뢰배들이 농업에 힘쓰지 않고 일부러 남의 집에 불을 질러서 도둑질을 하려는 술책입니다. 금화도감(禁火都監)의 제조(提調)로 하여금 각 부를 나누어 맡아, 그 구역 안에 아무런 직업이 없으면서 의식이 풍족하며, 밤이면 술을 마시고 낮에는 잠을 자는 등, 그 행동이 의심스러운 자가 있으면, 각방(各坊)의 색장(色掌)으로 하여금 잡아 올리게 하여, 그의 본적지와 근본 내력과 생활비의 출처를 차근차근 세밀히 추궁하여, 진범을 잡아 도둑의 무리가 저절로 줄어들도록 할 것.(생략) 1. 도성 안에 못을 팔 수 있는 곳에는 파서, 물을 저장하여 둘 것.1. 물을 저장하는 독은 중국의 예에 의하여 다섯 집마다 1개소씩 만들어 두고, 물을 저장하는 상황을 조사할 것.”이라 하였다.(생략)(세종실록 권 31, 세종 8년<1426년> 2월 26일)

[해설]

태종 7년에 서울의 각 마을별로 불을 끄기 위하여 물을 담은 옹기를 두기로 하였는데, 세종 때에 이 정책이 더욱 강화되어 다섯 집 마다 물을 담은 옹기를 두기로 하였다.


[원본]

尹鳳進段子二匹、羊七口、;枝一甕、檀香、沙梨三缸、金橘煎一缸、中宮段子二
윤봉진단자이필、양칠구、려지일옹、단향、사리삼항、금귤전일항、중궁단자이
匹、東宮段子一匹. 白彦進段子四匹、羅一匹、絹五匹、中宮段子三匹、羅一匹、絹四
필、동궁단자일필. 백언진단자사필、나일필、견오필、중궁단자삼필、나일필、견사
匹、東宮段子二匹、羅一匹、絹三匹(世宗實錄 권 31, 世宗 8년 3월 丁未)
필、동궁단자이필、라일필、견삼필

[번역]

윤봉이 단자(段子) 2필, 양 7마리, 여지(;枝) 한 항아리, 단향(檀香)과 사리(沙梨) 3항아리, 금귤전(金橘煎) 한 단지를 올리고, 중궁에게 단자 2필과, 세자에게 단자 1필을 올리었다. 백언은 단자 4필, 비단(羅) 1필, 비단(絹) 5필을 올리고, 중궁에게 단자 3필, 비단(羅) 1필, 비단(絹) 4필과, 세자에게 단자 2필, 비단(羅) 1필, 비단(絹) 3필을 바쳤다.(세종실록 권 31, 세종 8년<1426년> 3월 13일)



[원본]

刑曹啓 善山囚甕匠大金, 謀殺私奴伐介, 律該斬. 從之.
형조계 선산수옹장대금, 모살사노벌개, 율해참. 종지.
(世宗實錄 권62, 世宗 15년 12월 庚午)

[번역]

형조에서 아뢰기를, “선산의 죄수인 옹기장 대금이 사삿집의 종 벌개를 죽였는데, 율문에 비추어 보면 참형에 해당합니다.”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 권62, 15년<1433년> 12월 21일)

[해설]

조선왕조실록에서 옹기장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옹기장 대금이 남자 종인 벌개를 의도적으로 죽였는데, 죽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원본]

賜米豆各十石、;醬各一甕于集賢殿直提學金墩之母. 墩曾入集賢殿, 久侍經筵, 以老
사미두각십석、해장각일옹우집현전직제학금돈지모. 돈증입집현전, 구시경연, 이로
母居全羅康津縣, 乞郡歸養, 授長興都護府使, 未滿其期, 以本殿直提學召還, 仍命率母
모거전라강진현, 걸군귀양, 수장흥도호부사, 미만기기, 이본전직제학소환, 잉명솔모
來京, 故乃有是賜焉. 其兄塡爲靈巖守, 亦未滿箇日, 超拜禮曹正郞.(世宗實錄 권 63, 世
래경, 고내유시사언. 기형전위령암수, 역미만개일, 초배례조정랑.
宗 16년 2월 甲寅)

[번역]

쌀과 콩 각각 10섬과 젓갈과 장(醬) 각각 한 항아리를 집현전 직제학 김돈의 모친에게 하사하였다. 김돈이 일찍이 집현전에 들어가 오랫동안 경연에 시종해 왔는데, 늙은 어머니가 전라도 강진현에 살고 있다고 하여, 지방관이 되어 돌아가서 봉양하기를 빌어 장흥 도호부사에 제수되었다가, 그 임기가 차기도 전에 다시 본전 직제학으로 소환되고, 인하여 어머니를 데리고 서울로 오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이 하사가 있게 된 것이다. 그의 형인 김전도 영암 수령으로 나갔었는데, 역시 임기가 차기 전에 예조정랑에 발탁 임명되었다.(세종실록 권 63, 16년<1434년> 2월 6일)



[원본]

議政府據戶曹呈啓 謹按國朝文類, 胡長孺作何長者傳云 長者名敬德. 元大德十一年,
의정부거호조정계 근안국조문류, 호장유작하장자전운 장자명경덕. 원대덕십일년,
民大飢困, 敬德時在杭州, 請好善有才智僧俗六七人. 又於飢民中, 擇强壯者四五十人,
민대기곤, 경덕시재항주, 청호선유재지승속륙칠인. 우어기민중, 택강장자사오십인,
借居菩提寺, 作粥以施飢民. 其法夜先煮粥, 納置大甕中待冷, 明朝飢民以來到先後爲次,
차거보제사, 작죽이시기민. 기법야선자죽, 납치대옹중대랭, 명조기민이래도선후위차,
列坐堂下, 或數多則出坐門外道上, 相對而坐, 虛其坐前, 通行給粥. 先令飢民各持食器
열좌당하, 혹수다칙출좌문외도상, 상대이좌, 허기좌전, 통행급죽. 선령기민각지식기
來坐, 若無器者, 則敬德假與之器. 兩人持粥盆, 一人執勺, 行注飢民所持器中, 飢民食
래좌, 약무기자, 칙경덕가여지기. 양인지죽분, 일인집작, 행주기민소지기중, 기민식
粥畢, 以次出去. 每日粥米七八石, 或至十石, 凡七十日, 飢民無一人死者. 昔湖州官作粥
죽필, 이차출거. 매일죽미칠팔석, 혹지십석, 범칠십일, 기민무일인사자. 석호주관작죽
食飢民, 粥出釜中猶熱沸, 人飢甚急食熱粥, 不出百步外, 卽;死. 雖飢困未至死, 食熱粥
식기민, 죽출부중유열비, 인기심급식열죽, 불출백보외, 즉부사. 수기곤미지사, 식열죽
者, 百無一生. 長者敬德食飢民, 夜先煮粥貯大甕中, 蓋徵湖州事也. 我國近年賑飢之時,
자, 백무일생. 장자경덕식기민, 야선자죽저대옹중, 개징호주사야. 아국근년진기지시,
中外官吏不知此法, 多施熱粥, 以致隕命. 乞依何長者救飢之法, 以賑飢民. 從之.
중외관리불지차법, 다시열죽, 이치운명. 걸의하장자구기지법, 이진기민. 종지.
(世宗實錄 권 84, 世宗 21년 3월 丙寅)

[번역]

의정부에서 호조의 첩정에 의하여 아뢰기를, “삼가 『국조문류』를 상고하오니, 호장유가 『하장자전』을 지었는데, 그 전(傳)에 이르기를, ‘장자(長者)의 이름은 경덕이었다. 원나라 대덕 11년에 백성들이 큰 흉년으로 곤란하였는데, 경덕이 그때에 항주(杭州)에 있었다. 그는 선한 일을 좋아하여 재주있고 지혜있는 중과 속인 6~ 7인을 청하고, 또 굶주린 백성 중에서 튼튼한 자 40~50인을 골라 보리사를 빌려 살게 하고 죽을 쑤어서 기민하게 먹이되, 그 법은 밤에 먼저 죽을 쑤어서 큰 독 속에 넣어 두어 식기를 기다려서, 이튿날 아침에 굶주린 백성이 오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당(堂) 아래에 벌려 앉게 하였다. 혹시 수효가 많으면 문 밖의 길 위에 나가 앉게 하되, 마주보고 앉게 하고, 그 앉은 앞을 비어 놓아서 통해 다니며 죽을 줄 수 있게 하였다. 먼저 굶주린 백성들에게 먹을 그릇을 가지고 와서 앉게 하였는데, 그릇이 없는 자는 경덕이 빌려 주었다. 두 사람은 죽동이를 들고, 한 사람은 국자를 들고 가면서 굶주린 백성이 가진 그릇에다가 죽을 놓아 준다. 굶주린 백성이 죽을 다 먹고 나서 차례로 나가는데, 매일 죽쌀이 7~8섬, 혹은 10섬에 이르렀는데, 무릇 70일 동안에 굶주린 백성 가운데서 한 사람도 죽은 자가 없었다. 예전에 호주 관가에서 죽을 쑤어서 기민을 먹였는데 죽이 가마에서 나와 아직도 뜨겁게 끓는 것을 주었다. 사람들이 매우 줄였으므로 급하게 먹고서 나가다가 1백 걸음도 가지 못하여 즉시 넘어져 죽었다. 비록 굶주림에 지쳤더라도 죽지는 아니하였는데, 뜨거운 죽을 먹은 자는 백에 한 사람도 살지 못하였다. 장자(長者) 경덕이 굶주린 백성을 먹이되, 먼저 죽을 쑤어서 큰 독 속에 담아둔 것은 대개 호주의 일을 알고 한 것이다.’ 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근년에 굶주린 백성을 진휼함에, 전국의 관리들이 이 법을 알지 못하여 흔히 뜨거운 죽을 주어서 죽게 하였으니, 하장자(何長者)의 굶주린 백성을 구하던 법에 의하여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게 하옵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 권 84, 세종 21년<1439년> 3월 18일)

[해설]

예로부터 옹기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굶주린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나누어 주는 죽을 식히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원본]

戶曹判書趙惠、參議洪元用遣佐郞閔順孫啓曰亂臣家財內甕器上曹事, 臣等預知, 請避
호조판서조혜、참의홍원용견좌랑민순손계왈란신가재내옹기상조사, 신등예지, 청피
嫌. 參判盧叔仝以爲, 臣常仕義禁府, 未知本曹之事, 然安然就職, 未安於心, 請避嫌. 命
혐. 참판로숙동이위, 신상사의금부, 미지본조지사, 연안연취직, 미안어심, 청피혐. 명
議.(端宗實錄 권 11, 端宗 2년 5월 丁丑)
의.

[번역]

호조판서 조혜, 참의 홍원용이 호조좌랑 민순손을 보내어 아뢰기를, “난신(亂臣)의 가재(家財) 중에서 옹기를 호조에 올려온 일은 신 등이 미리 알았으니, 청컨대 피혐하게 하소서.” 하였다. 참판 노숙동은 말하기를, “신이 항상 의금부에 출사하여 호조의 일을 알지 못하나, 편안하게 직무에 나아가는 것이 마음에 미안합니다. 청컨대 피혐하게 하소서.”하니,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단종실록 권 11, 단종 2년<1454년> 5월 27일)

[해설]

반역죄를 범한 신하의 재산을 몰수할 때 옹기 같은 가재도구도 포함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에 호조에서 몰수한 옹기를 압류할 정도로 옹기가 귀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원본]

前此, 永安道觀察使成俊馳啓, 本道人心風俗與南方不同, 其世傳管下, 請仍舊勿籍軍
전차, 영안도관찰사성준치계, 본도인심풍속여남방불동, 기세전관하, 청잉구물적군
額.(永安道土豪多占良民, 名曰世傳管下, 役之如奴婢) 軍籍提調李克培來啓曰, 諸司甕
액.(영안도토호다점량민, 명왈세전관하, 역지여노비) 군적제조리극배래계왈, 제사옹
匠業已給丁. 京外許多諸色匠人, 若盡給丁, 則厥數甚多, 不給丁, 則與甕匠不同. 且永安
장업이급정. 경외허다제색장인, 약진급정, 즉궐수심다, 不給丁, 즉여옹장불동. 차영안
道軍士皆給率丁, 則如無奉足而侍衛于京者、族親之疎遠無屬處者、彼人投化者, 一應從
도군사개급솔정, 즉여무봉족이시위우경자、족친지소원무속처자、피인투화자, 일응종
仕人等皆給率丁乎. 傳曰其議于領敦寧以上. 韓明澮等啓曰, 匠人則同居族親雇工中一人,
사인등개급솔정호. 전왈기의우령돈녕이상. 한명회등계왈, 장인즉동거족친고공중일인,
永安道人則同居族親雇工中二人, 毋定他役爲便. 傳曰匠人給保, 依卿等所議, 永安道人
영안도인즉동거족친고공중이인, 무정타역위편. 전왈장인급보, 의경등소의, 영안도인
給丁事, 徐當更議處之, 仍命承政院議之 李世佑議, 本道土豪多畜漏丁, 以致軍額減少,
급정사, 서당경의처지, 잉명승정원의지 李世佑議, 본도토호다축루정, 이치군액감소,
其弊不;. 前日李施愛之變, 亦以此也 國家用法, 不可使南北各異, 豈可獨爲永安一道給
기폐불자. 전일이시애지변, 역이차야 국가용법, 불가사남북각이, 기가독위영안일도급
良民爲率丁奴使之乎. 軍籍事目內 如婢夫雇工貧不自存, 寄托人家以資生理者, 論以無
양민위솔정노사지호. 군적사목내 여비부고공빈불자존, 기탁인가이자생리자, 론이무
役竝定軍役, 則所托之家, 必不率居, 一朝黜送, 終至逃散, 如此者勿令搜括. 若土豪以富
역병정군역, 칙소탁지가, 필불솔거, 일조출송, 종지도산, 여차자물령수괄. 약토호이부
實人, 冒稱婢夫雇工, 謀免軍額, 則盡括充役. 請依此例施行. 尹殷老,安處良,宋瑛,李則,
실인, 모칭비부고공, 모면군액, 칙진괄충역. 청의차례시행. 윤은노,안처량,송영,이칙,
韓堰議, 永安之人本無臧獲, 全賴率丁以資生, 一朝盡括, 則無手足, 必生愁怨, 仍舊給率
한언의, 영안지인본무장획, 전뢰솔정이자생, 일조진괄, 칙무수족, 필생수원, 잉구급솔
丁二人爲便.(成宗實錄 권 200, 成宗 18년 2월 乙亥)
정이인위편.

[번역]

이에 앞서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성준(成俊)이 치계(馳啓)하기를, 영안도는 인심과 풍속이 남쪽 지방과 다르니, 그 세전 관하(世傳管下)를, 청컨대 예전대로 두고 군액(軍額)에 적(籍)을 두지 말도록 하소서.”(영안도의 토호(土豪)가 양민을 많이 점령하여 명칭을 세전 관하라고 하여 노비처럼 부렸다.)하였는데, 군적제조(軍籍提調) 이극배(李克培)가 와서 아뢰기를, “여러 관서의 옹기장(甕匠)에게 이미 정(丁)을 주었는데, 경외(京外)의 허다한 여러 장인(匠人)들에게 만약 모두 정을 주면 그 수가 매우 많을 것이며 정을 주지 아니하면 옹기장과 같지 않게 됩니다. 또 영안도(永安道)의 군사에게 모두 솔정(率丁)을 주면, 봉족(奉足)이 없이 서울에서 시위(侍衛)하는 자와 족친(族親)이 소원(疎遠)하여 붙어 살 곳이 없는 자와 저 야인(野人)들 가운데 투화(投化)한 자와 일체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솔정을 주겠습니까?”하니, 전교하기를,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도록 하라.”하였다. 한명회(韓明澮) 등이 아뢰기를, “장인(匠人)이 같이 사는 족친이나 고공(雇工) 가운데 한 사람을, 영안도 사람은 같이 사는 족친이나 고공 가운데 두 사람을 다른 역사(役事)에 정하지 않는 것이 적당합니다.”하니, 전교하기를, “장인에게 보(保)를 주는 것은 경 등이 의논한 바에 의할 것이며, 영안도 사람에게 정(丁)을 주는 일은 천천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하였다. 인하여 승정원에 명하여서 이 일을 의논하게 하니, 이세우(李世佑)는 의논하기를, “본도(本道)의 토호에게 누정(漏丁)이 많이 쌓여서 군액(君額)이 감소됨을 이루었으니, 그 폐단이 작지 아니합니다. 전일 이시애(李施愛)의 변(變) 역시 이러한 까닭입니다. 국가에서 법을 적용하는 데에 남;북으로 하여금 각각 다르게 할 수가 없는데, 어찌 홀로 영안도 한 도만 양민을 주어 솔정(率丁)으로 삼아서 종으로 부리도록 하겠습니까? 군적사목(軍籍事目) 가운데, ‘만일 비부(婢夫)나 고공(雇工)이 가난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없어서 남의 집에 의탁하여 생활하는 자를 역(役)이 없는 것으로 논하여 모두 군역(軍役)을 정하면, 의탁하던 집에서 반드시 데리고 살지 아니하여 하루아침에 내쳐 보낼 것이니, 마침내 도망쳐 흩어지는 데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은 자는 찾아내지 말도록 한다. 만약 토호가 부실(富實)한 사람을 비부(婢夫)나 고공(雇工)이라고 거짓 일컬어서 군액을 면하기를 꾀하면 모두 찾아내어 군역(軍役)에 채운다.’라고 하였으니, 청컨대 이 예에 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하고, 윤은로(尹殷老), 안처량(安處良), 송영(宋瑛), 이칙(李則), 한언(韓堰)은 의논하기를, “영안도 사람은 본래 노비가 없고 오로지 솔정(率丁)에게 의지하여 생활하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찾아낸다면 수족(手足)이 없어져서 반드시 근심과 원망이 생길 것이니, 예전대로 솔정 두 사람을 주는 것이 적당합니다.”하였다.(성종실록 권 200 성종 18년<1487년> 2월 5일)

[해설]

각 중앙관사에 속한 옹기장에게는 국가의 일을 하는 대신에 그들의 생계를 위해 솔정(率丁)을 붙여졌다. 이들은 장인의 가족이거나 혹은 이웃에 있는 사람으로서 장인에게 면포를 바치는 등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성종 때 중앙관서에 소속된 장인은 모두 108명으로 다른 종류의 장인보다 그 수가 많았다.


[원본]

卯正上御別殿, 領事李德馨, 知事韓應寅, 特進官大司憲宋言愼, 特進官尹泂, 大司諫
묘정상어별전, 영사이덕형, 지사한응인, 특진관대사헌송언신, 특진관윤형, 대사간
權憘, 參贊官柳夢寅、侍講官姜籤、侍讀官李德泂等入侍.(생략) 泂曰, 瓦署廢後, 燔瓦一
권희, 참찬관유몽인、시강관강첨、시독관리덕형등입시.(생략) 형왈, 와서폐후, 번와일
事, 專責於工曹, 而瓦署所屬甕匠輩, 多屬於司諫院. 本曹移文于兵曹, 則兵曹將欲啓請
사, 전책어공조, 이와서소속옹장배, 다속어사간원. 본조이문우병조, 칙병조장욕계청
還屬, 而下吏不爲擧行. 請令兵曹, 速爲處置何如.(宣祖實錄 권 164 宣祖 36년 7월 丁丑)
환속, 이하리불위거행. 청영병조, 속위처치하여.

[번역]

묘정(卯正)에 상이 별전에 나아갔는데, 영사 이덕형(李德馨), 지사 한응인(韓應寅), 특진관 대사헌 송언신(宋言愼), 특진관 윤형(尹泂), 대사간 권희(權憘), 참찬관 유몽인(柳夢寅), 시강관 강첨(姜籤), 시독관 이덕형(李德泂) 등이 입시하였다.(생략) 윤형(尹泂)이 아뢰기를, “와서(瓦署)가 폐지된 뒤로 기와 굽는 일을 오로지 공조가 책임지고 있는데, 와서에 속하였던 옹기장들은 대부분 사간원에 이속되었습니다. 이에 본조에서 병조에 이문하였더니 병조가 계청하여 도로 이속시키려 하였으나 하리(下吏)가 거행하지 않습니다. 병조를 시켜 빨리 조치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하였다.(선조실록 권 164 선조 36년<1603년> 7월 23일)



[원본]

私奴義男白, 應澍父申涎, 去七月來見其子, 應澍與其父相鬪, 其父不勝憤怒, 打破醬
사노의남백, 응주부신연, 거칠월래견기자, 응주여기부상투, 기부불승분노, 타파장
甕, 還歸其家云云. 他餘事則不得詳知矣.(宣祖實錄 권 202, 宣祖 39년 8월 丙午)
옹, 환귀기가운운. 타여사칙불득상지의.


[번역]

사노 의남(義男)이 진술하였다. “신응주의 아버진인 신연이 지난 7월에 아들을 찾아왔는데, 응주가 아버지와 서로 다투었습니다. 아버지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장단지를 깨부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다른 일은 자세히 모릅니다”.(선조실록 권 202, 선조 39년<1606년> 8월 10일)

[해설]

분풀이의 대상으로 장독을 깨드리는 행위는 태종 때에도 이미 실록 기사에 나오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원본]

丁巳十月初九日庚子營建都監啓曰, 都監各所中爐冶之役, 各樣寸釘粧飾打造, 甚爲纖
정사십월초구일경자영건도감계왈, 도감각소중로야지역, 각양촌정장식타조, 심위섬
密, 勤慢工拙, 無以勸懲. 海邊若干邑, 自本所別爲求請其魚鹽, 欲給其善造匠人矣. 臨陂
밀, 근만공졸, 무이권징. 해변약간읍, 자본소별위구청기어염, 욕급기선조장인의. 림피
縣令朴安禮, 石首魚及白蝦;, 非但;卽造送, 石首;六百束、白蝦;四十甕, 其數甚多.
현령박안례, 석수어급백하해, 비단진즉조송, 석수어륙백속、백하해사십옹, 기수심다.
捧用之意, 敢啓. 傳曰朴安禮事, 極爲可嘉. 陞;.
봉용지의, 감계. 전왈박안례사, 극위가가. 승서.
(光海君日記 권 120, 光海君 9년 10월 庚子)

[번역]

영건도감(營建都監)이 아뢰기를,“도감의 각소에서 풀무질을 하여 여러 가지 못이나 장석을 두드려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섬세한 것이어서 성실하고 정밀한 것을 장려하며 태만하고 서투른 것을 징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도감에서는 바닷가의 몇 개 고을에 대하여 물고기와 소금을 특별히 청구하여, 잘 만든 장인(匠人)에게 주려고 하였습니다. 임피현령 박안례는 조기와 새우젓을 제때에 마련해 보냈을 뿐 아니라, 조기는 6백 두름, 새우젓은 40독이나 되어 그 수량이 매우 많습니다. 받아서 사용했으면 하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하니, 전교하기를,“박안례의 일은 매우 가상하다. 승서(陞;)하도록 하라.”(광해군일기 권 120, 광해군 9년<1617년> 10월 9일)

[해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궁궐을 복원하기 위하여 광해군은 영건도감을 만들고 공사를 하였는데, 이때 공이 있는 장인들에게 조기와 새우젓 등을 나누어 주려고 하였다. 임피현감이 새우젓 40독을 바쳐서 관직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담은 기록이다.


[원본]

次對. (생략) 宣惠廳堂上鄭民始啓言, 京外船隻, 旣屬均廳之後, 免稅者, 有免稅掌標,
차대. ;;;;;;;; 선혜청당상정민시계언, 경외선척, 기속균청지후, 면세자, 유면세장표,
出稅者, 有出稅掌標, 凡干船隻, 無本廳掌標, 則不得往來, 自是規例, 而今番摘奸時, 稱
출세자, 유출세장표, 범간선척, 무본청장표, 칙불득왕래, 자시규례, 이금번적간시, 칭
以工曹載甕船、黃海水營追捕船、安興待變船、泰安採鰒船, 不待本廳掌標, 只有該曹
이공조재옹선、황해수영추포선、안흥대변선、태안채복선, 불대본청장표, 지유해조
及該營邑帖文. 苟使各司、各營邑, 成給帖文, 任自行船, 則句管本廳印給掌標之. 果安
급해영읍첩문. 구사각사、각영읍, 성급첩문, 임자행선, 칙구관본청인급장표지. 과안
在哉. 事極駭然, 所當論罪, 而毋論京外, 似此謬例, 亦多有之, 只罪現捉者, 亦涉斑駁.
재재. 사극해연, 소당론죄, 이무론경외, 사차류례, 역다유지, 지죄현착자, 역섭반박.
此後, 則內而各司、外而營邑, 毋敢私給帖文之意, 請嚴明申飭. 從之.
차후, 칙내이각사、외이영읍, 무감사급첩문지의, 청엄명신칙. 종지.
(正祖實錄 권 9, 正祖 4년 4월 戊午)

[번역]

차대(次對)하였다.(생략) 선혜청 당상 정민시가 아뢰기를, “경외(京外)의 배를 이미 균역청에 소속시킨 뒤에는 세(稅)를 면제한 것에는 세를 면제한 장표가 있고 세를 내는 자에게는 세를 내는 장표가 있으므로 모든 배는 본청의 장표가 없으면 왕래하지 못하는 것이 본디 규례인데, 이번 적간(摘奸) 때에 공조의 재옹선(載甕船), 황해 수영의 추포선(追浦船), 안흥의 대변선(待變船), 태안의 채복선(採鰒船)이라는 것은 본청의 장표를 기다리지 않고 해조(該曹)와 해영(該營), 해읍(該邑)의 체문(帖文)을 가졌을 뿐이었습니다. 각사(各司), 각영(各營), 각읍(各邑)에서 체문을 만들어 주어 마음대로 배를 부리게 하면 관리하는 본청에서 장표를 박아 주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일이 매우 놀라우므로 논죄해야 할 것입니다마는,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이러한 잘못된 예가 또한 많이 있을 것인데 이번에 잡힌 자만을 죄주는 것은 또한 고르지 못하니, 이 뒤로는 서울의 각사와 지방의 각영, 각읍에서 감히 사사로이 체문을 주지 못한다는 뜻으로 청컨대, 엄명히 신칙하소서.”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정조실록 권 9, 정조 4년<1780년> 4월 10일)

[해설]

이 자료는 중앙 부서의 옹기를 공급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공조에는 옹기를 나르는 전용 배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옹기의 운송 수단을 알 수 있다. 다만 공조의 선박이 운송하는 옹기의 제작처나 구체적인 운송 경로 등에 관한 기록은 없다.


[원본]

次對. 許市民六廛外, 通共和賣.【六廛, 立廛、綿布廛、綿紬廛、布廛、紵廛、紙廛】
차대. 허시민육전외, 통공화매.【육전, 립전、면포전、면주전、포전、저전、지전】
左議政蔡濟恭啓言, “若論都下民;, 都庫爲最. 我朝亂廛之法, 專爲六廛之上應國役, 使
좌의정채제공계언, “약론도하민막, 도고위최. 아조란전지법, 전위륙전지상응국역, 사
之專利也. 近來游手無賴之輩, 三三五五, 自作廛號, 凡係人生日用物種, 無不各自主張.
지전이야. 근래유수무뢰지배, 삼삼오오, 자작전호, 범계인생일용물종, 무불각자주장.
大以馬;船載之産, 小而頭戴手提之物, 伏人要路, 廉價勒買, 而物主如或不聽, 輒稱亂
대이마태선재지산, 소이두대수제지물, 복인요로, 염가륵매, 이물주여혹불청, 첩칭란
廛, 結縛歐納於秋曹、京兆, 故所持者, 雖或落本, 不得不垂涕泣賣去. 於是乎各列其肆,
전, 결박구납어추조、경조, 고소지자, 수혹락본, 불득불수체읍매거. 어시호각렬기사
以取倍價, 平民輩不買則已, 若係不得不買者, 則捨其廛, 更不可從他求得. 以故, 其價日
이취배가, 평민배불매칙이, 약계불득불매자, 칙사기전, 경불가종타구득. 이고, 기가일
增, 凡物之貴, 較視於臣之年少時, 不;爲三五倍. 近日則甚至蔬菜、甕器有廛號, 不得
증, 범물지귀, 교시어신지년소시, 불시위삼오배. 근일칙심지소채、옹기유전호, 불득
私自和賣, 民生之食而無鹽, 窮士之停廢祭先者, 往往有之. 凡此都庫, 禁之則當止, 而猶
사자화매, 민생지식이무염, 궁사지정폐제선자, 왕왕유지. 범차도고, 금지칙당지, 이유
且;默者, 不過;畏怨聲之歸於己耳. 古人曰一路哭, 何如一家哭. 避奸民輩三三五五之
차금묵자, 불과출외원성지귀어기이. 고인왈일로곡, 하여일가곡. 피간민배삼삼오오지
暗地咀口, 不救都下億萬人倒懸之勢, 則爲國任怨之意, 安在哉. 宜使平市署, 考出數三
암지저구, 불구도하억만인도현지세, 칙위국임원지의, 안재재. 의사평시서, 고출수삼
十年以來零;新設之廛號, 一倂革罷, 分付秋曹, 京兆六廛外以亂廛捉納者, 非徒勿施,
십년이래령쇄신설지전호, 일병혁파, 분부추조, 경조육전외이란전착납자, 비도물시
施以反坐, 則商賈有和賣之利, 民生無艱窘之患, 其怨則臣可自當之矣. 上詢諸臣, 僉曰
시이반좌, 칙상가유화매지리, 민생무간군지환, 기원칙신가자당지의. 상순제신, 첨왈
可, 從之.(正祖實錄 권 32, 正祖 15년 1월 庚子)

[번역]

차대를 거행하였다. 저자의 백성들에게 육전(六廛) 이외에서도 함께 매매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육전은 입전(立廛), 면포전(綿布廛), 면주전(綿紬廛), 포전(布廛), 저전(紵廛), 지전(紙廛)이다.】 좌의정 채제공이 아뢰기를, “도성에 사는 백성의 고통으로 말한다면 도거리 장사가 가장 심합니다. 우리나라의 난전을 금하는 법은 오로지 육전이 위로 나라의 일에 수응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익을 독차지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빈둥거리며 노는 무뢰배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스스로 가게 이름을 붙여 놓고 사람들의 일용품에 관계되는 것들을 제각기 멋대로 전부 주관을 합니다. 크게는 말이나 배에 실은 물건부터 작게는 머리에 이고 손에 든 물건까지 길목에서 사람을 기다렸다가 싼값으로 억지로 사는데, 만약 물건 주인이 듣지를 않으면 곧 난전이라 부르면서 결박하여 형조와 한성부에 잡아넣습니다. 이 때문에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간혹 본전도 되지 않는 값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팔아버리게 됩니다. 이에 제각기 가게를 벌려 놓고 배나 되는 값을 받는데, 평민들이 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부득이 사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 처한 사람은 그 가게를 버리고서는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 값이 나날이 올라 물건 값이 비싸기가 신이 젊었을 때에 비해 3배 또는 5배나 됩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채소나 옹기까지도 가게 이름이 있어서 사사로이 서로 물건을 팔고 살 수가 없으므로 백성들이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이 없거나 곤궁한 선비가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일까지 자주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도거리 장사를 금지한다면 그러한 폐단이 중지될 것이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단지 원성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겁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지방이 통곡하는 것이 한 집안만 통곡하는 것과 어찌 같으랴.’ 하였습니다. 간교한 무리들이 삼삼오오 떼지어 남몰래 저주하는 말을 피하고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들의 곤궁한 형편을 구제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위해 원망을 책임지는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땅히 평시서로 하여금 20, 30년 사이에 새로 벌인 영세한 가게 이름을 조사해 내어 모조리 혁파하도록 하고, 형조와 한성부에 분부하여 육전 이외에 난전이라 하여 잡아오는 자들에게는 벌을 베풀지 말도록 할 뿐만이 아니라 반좌법을 적용하게 하시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매매하는 이익이 있을 것이고 백성들도 곤궁한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그 원망은 신이 스스로 감당하겠습니다.” 왕이 여러 신하에게 물어보니 모두 옳다고 말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정조실록 권 32, 정조 15년<1791년> 1월 25일)

[해설]

조선 정조 때 서울 내에서 해당 물품 유통의 독점권을 갖고 있는 육의전의 독점권을 폐지하는 이른바 ‘신해통공’의 조치가 이루어진 사실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좌의정 채제공이 육의전의 독점권 폐지를 주장할 때 육의전의 독점권으로 인하여 옹기전도 가게가 있음을 예시로 거론하고 있다. 옹기의 경우 특정한 판매처가 있던 것은 아니며 대부분 공터나 노상에 늘어놓고 판매하던 것이 관행이었다.


[원본]

掌令趙星逵上疏曰(생략) 蓋自均役之後, 列邑守令, 征稅工商陶冶沙器甕器之村, 皆有
장령조성규상소왈(생략) 개자균역지후, 렬읍수령, 정세공상도야사기옹기지촌, 개유
常稅, 又創設許多名色, 以爲徵斂之妙逕. 守令擇差之敎, 日下於筵席, 苟充之政, 不出於
상세, 우창설허다명색, 이위징렴지묘경. 수령택차지교, 일하어연석, 구충지정, 불출어
自中. 況我殿下每當政注, 不無改望之擧, 此雖出於精擇之聖意, 然更擬之人, 安保其賢
자중. 황아전하매당정주, 불무개망지거, 차수출어정택지성의, 연경의지인, 안보기현
於見改之人乎. (생략) 批曰, 言甚根據, 諸條陳勉當體念, 而附陳事, 春間禁令與爾所謂
어견개지인호. (생략) 비왈, 언심근거, 제조진면당체념, 이부진사, 춘간금령여이소위
溫批, 俱出隨時適可之意, 此非息鬧而何. 尾陳兩件事, 一則近於;維民, 恐難於容措,
온비, 구출수시적가지의, 차비식료이하. 미진량건사, 일즉근어집유민, 공난어용조,
一則城外非遠地.(正祖實錄 권 27 正祖 13년 윤 5월 丁未)
일즉성외비원지.

[번역]

장령 조성규(趙星逵)가 상소하기를,(생략) 대체로 균역법(均役法)이 시행된 뒤로 고을 수령들이 공인(工人);상인(商人) 및 사기(沙器)나 옹기(甕器)를 만드는 마을에서 징수하는 세금에는 모두 정해진 액수가 있는데, 또 허다한 명색을 새로 만들어내어 수탈하는 묘책으로 삼고 있습니까. 이에 수령을 골라서 임명하라는 전교를 날마다 연석(筵席)에서 내리시지만 구차히 머리수나 채우는 정사는 그런 무리를 임명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 전하께서 정주(政注) 때마다 의망(擬望)된 자를 바꾸라는 거조가 없지 않으셨으니, 이것이 비록 정선하겠다는 성의(聖意)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다시 의망되는 사람이 바뀌기 이전의 사람보다 훌륭하리라는 것을 어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생략) (왕이)비답하기를, “말에 매우 근거가 있으니 여러 조항에 권면한 것들을 깊이 생각하겠다. 덧붙여 진술한 일은, 봄에 내린 금령(禁令)과 그대가 이른바 온화한 비답이란 것은 모두 때에 따라 걸맞게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이 시끄러움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미에 진술한 두 건(件)의 일은 하나는 백성을 속박하는 데 가까우니 아마도 받아들여 시행하기 어려울 것 같고, 하나는 성 밖이 그리 먼 곳은 아니다.” 하였다.(정조실록 권 27 정조 13년<1789년> 윤 5월 22일)



[원본]

刑曹以邪學承款罪人正法, 啓罪人鄭光受, 邪號巴爾納, 每會徒黨, 逐日講習, 與妻雲
형조이사학승관죄인정법, 계죄인정광수, 사호파이납, 매회도당, 축일강습, 여처운
惠, ;誘愚氓, 手造邪書, 到處行賣. 罪人洪翼萬, 邪號安堂, 亦受領洗之法, 與文謨講論
혜, 광유우맹, 수조사서, 도처행매. 죄인홍익만, 사호안당, 역수령세지법, 여문모강론
酷習, 事以神父. 罪人金啓完, 借看邪書於崔必恭, 與丁若鍾、黃嗣永、李秋贊等, 作爲
혹습, 사이신부. 죄인금계완, 차간사서어최필공, 여정약종、황사영、이추찬등, 작위
血黨, 邪號西滿. 罪人孫敬允, 邪號熱瓦削, 始學邪書於崔必恭, 到處流毒, 訛誤多人. 罪
혈당, 사호서만. 죄인손경윤, 사호열와삭, 시학사서어최필공, 도처류독, 와오다인. 죄
人金義浩, 始學於必恭, 往習於嗣永. 罪人宋再紀, 與若鍾、嗣永相親, 嗣永亡命時, 相與
인금의호, 시학어필공, 왕습어사영. 죄인송재기, 여약종、사영상친, 사영망명시, 상여
謀議. 罪人金貴同, 以甕店移接於堤川舟論山中, 金漢彬率一李哥喪者而來, 合力掘地,
모의. 죄인금귀동, 이옹점이접어제천주론산중, 금한빈솔일리가상자이래, 합력굴지,
使之隱匿, 學習邪書, 所謂李哥, 果是嗣永. 罪人崔女雪愛, 沈溺邪術, 知嗣永之亡命, 造
사지은닉, 학습사서, 소위이가, 과시사영. 죄인최녀설애, 침닉사술, 지사영지망명, 조
給喪服. 罪人金日浩, 托身於必悌, 往參於若鍾, 血心講習, 不變初心. 罪人張德裕, 與文
급상복. 죄인금일호, 탁신어필제, 왕참어약종, 혈심강습, 불변초심. 죄인장덕유, 여문
謨、若鍾, 約同死生. 罪人邊得中, 蠱惑邪學, 多年講習, 奪人財物, 奸騙婦女. 罪人李景
모、약종, 약동사생. 죄인변득중, 고혹사학, 다년강습, 탈인재물, 간편부녀. 죄인이경
陶, 以沇夏之子, 哲身之甥, 順伊之;, 連姻接族, 皆是邪學, 酷信妖書, 綢繆邪黨. 罪人
도, 이연하지자, 철신지생, 순이지남, 련인접족, 개시사학, 혹신요서, 주무사당. 죄인
黃日光, 學習邪書於李存昌, 移接若鍾隔隣, 受洗受號, 號以深淵. 罪人韓德運, 始學於尹
황일광, 학습사서어이존창, 이접약종격린, 수세수호, 호이심연. 죄인한덕운, 시학어윤
持忠, 弔樂敏之;, 斂必悌之屍. 罪人洪;, 以敎萬之子, 同參於文謨瞻禮之座. 罪人權相
지충, 조악민지원, 렴필제지시. 죄인홍인, 이교만지자, 동참어문모첨례지좌. 죄인권상
問, 以日身之子, 從學邪書, 其父死後, 因爲蠱惑, 竝以妖言妖書, 傳用惑衆, 結案正法,
문, 이일신지자, 종학사서, 기부사후, 인위고혹, 병이요언요서, 전용혹중, 결안정법,
居在外道人, 竝押送各該邑, 用刑.(純祖實錄 권3, 純祖 1년 12월 戌辰)
거재외도인, 병압송각해읍, 용형.

[번역]

형조에서 승관한 사학 죄인을 정법(正法)하고 아뢰기를, “죄인 정광수는 사호(邪號)가 파이납으로 늘 도당을 모아 놓고 날마다 강습하면서 자기 처 운혜와 더불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여 유혹하였고 사서(邪書)를 직접 만들어 가는 곳마다 다니며 팔았습니다. 죄인 홍익만은 사호가 안당으로 역시 영세의 법을 받고서 주문모와 더불어 강론을 대단하게 학습하여 신부로 섬겼습니다. 죄인 김계완은 사서를 최필공한테서 빌려 보고 정약종, 황사영, 이추찬 등과 더불어 혈당(血黨)을 만들었는데, 사호는 서만입니다. 죄인 손경윤은 사호가 열와삭으로 사서를 최필공한테서 처음으로 배워서 가는 곳마다 해독을 끼치어 많은 사람을 그릇되게 하였습니다. 죄인 김희호는 최필공한테서 처음으로 배우고 황사영에게 찾아가 익혔습니다. 죄인 송재기는 정약종;황사영과 더불어 서로 친하여 황사영이 망명할 때에 서로 모의하였습니다. 죄인 김귀동은 옹기점을 제천의 주론산 중에 옮겨 거처하였는데, 김한빈이 한 이가의 상제(喪制)를 데리고 오자, 힘을 합해 땅을 파서 숨도록 하고는 사서를 학습하였으니, 이른바 이가란 자는 바로 황사영이었습니다. 죄인 최녀(崔女) 설애는 사술(邪術)에 빠져 들어 황사영이 망명해 온 것을 알고는 상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죄인 김일호는 최필제에게 몸을 의탁하고 정약종에게 찾아가 성심을 다해 강습하고는 처음 먹었던 마음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죄인 장덕유는 주문모;정약종과 더불어 생사(生死)를 같이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죄인 변득중은 사학에 고혹되어 여러해 동안 강습하였고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는 데 있어서 부녀들을 간교하게 속였습니다. 죄인 이경도는 이윤하의 아들이고 권철신의 생질이며 순이의 오라비인데, 연관된 인척과 접촉하는 종족이 모두 사학의 무리로서 요서(妖書)를 혹독하게 믿었고 사당(邪黨)을 주무하였습니다. 죄인 황일광은 이존창에게 사서를 학습하고서 정약종의 가까운 이웃으로 거처를 옮겨 자리를 잡고는 세례를 받고 명호도 받았는데, 심연이라고 사호를 지었습니다. 죄인 한덕운은 윤지충에게서 비로소 배웠는데, 홍낙민의 원혼을 조문하였고 최필제의 시체를 거두어 주었습니다. 죄인 홍인은 홍교만의 아들로서 주문모가 예배를 보는 자리에 동참하였습니다. 죄인 권상문은 권일신의 아들로서 사서를 따라 배우다가 그 아비가 죽은 뒤로 인하여 고혹되었는데, 모두 요사스러운 말과 요사스러운 글을 선전하여 뭇사람들을 미혹시킨 것으로써 결안 정법(結案正法)하였으며, 살아 있는 외도(外道)의 사람은 각각 해당 고을로 압송하여 형벌을 행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순조실록 권3, 순조 1년<1801년> 12월 26일)

[해설]

순조가 즉위한 다음 해인 1801년부터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이 확산되면서 천주교인인 황사영이 1801년 10월 초에 제천에서 붙잡혔다. 이 자료는 형조에서 잡혀 온 죄인별로 심문 결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이 자료를 통하여 천주교도인 김귀영이 제천에서 옹기점을 운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천주교인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산 속에서 옹기를 제작하여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자료를 통하여 그러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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